제3장 형태소의 분석 방법과 단위들-2 [우리말 문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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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단어

단어의 정의

단어는 가장 널리 쓰이는 문법 용어이지만 엄격하게 정의하기는 매우 어렵다. 단어를 의미를 기준으로 정의하여 궁극적으로 독립된 의미 단위라고 하여 의미를 기준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그러나 추천은 한 단어로 취급되지만 가을 하늘은 한 단어로 취급되지 않는 이유를 의미의 기준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형태소 중에는 문장에서 자립적으로 쓰이지 못하는 것이 있지만 단어는 문장에서 자립적으로 쓰인다. 그리하여 흔히 단어를 자립성의 관점에서 정의한다. 자립성이란 문장에서 혼자 쓰일 수 있는 성질을 말한다.

 

(1) 철수가 돌다리를 건넜다.

 

(1)에서 철수가, 돌다리를, 건넜다나 돌다리를 건넜다 등은 자립성을 가진다.

 

돌다리를 건넜다가 자립성을 가지지만 우리는 이를 단어라 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철수가'나 '돌다리를' 전체가 하나의 단어인지에 대해서도 견해가 갈린다. '건넜다'의 경우 구성 요소가 모두 의존형태소이므로 전체가 자립성을 가진 요소이지만 '돌다리를 건넜다'나 '철수가', '돌다리를'은 구성 요소 안에 자립성을 가진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자립성을 가진 '철수', '돌다리' 등이 단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단어는 '자립성을 가진 단위 중에서 가장 작은 단위'로 정의하기도 한다.

 

자립성의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우리말의 조사는 단어의 자격을 가지기 어렵게 된다. 명사나 대명사 등 체언에 조사가 결합한 형식은 어떤 면에서는 동사나 형용사 등 용언 어간에 어미가 결합한 형식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동사나 형용사의 어간에 어미가 결합한 형식 전체를 하나의 단어로 본다면 명사나 대명사에 조사가 결합한 형식도 전체를 하나의 단어로 본다면 명사나 대명사에 조사가 결합한 형식도 전체를 하나의 단어로 보아야 할지 모른다. 우리말 문법가 중에서 이런 태도를 취하는 사람도 있고 북한은 초기부터 조사를 단어로 보지 않는 태도를 취하여 왔다. 그러나 현행 학교 문법에서도 그렇듯이 많은 사람들은 조사는 어미와 달리 하나의 단어로 취급한다. 조사에 선행하는 체언의 자립성이 어미에 선행하는 용언 어간의 자립성보다 훨씬 높다는 것이 어미와 달리 조사를 단어로 취급하는 중요한 이유이다.

 

자립성은 단어의 특성을 드러내는 데에 꽤 유용한 정의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분명한 한계를 가지기도 한다. '돌다리, 등불'과 같은 합성어는 하나의 단어임에 분명하지만 이들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인 '돌'과 '다리', '등'과 '불' 등도 문장에서 혼자 쓰일 수 있어 자립성을 가진 요소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돌다리'나 '등불'이 단어가 아니라 '돌'과 '다리', '등'과 '불'이 단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자리이동이나 휴지, 분리 가능성 등을 단어를 정의하는 기준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곧 하나의 단어는 문장 내에서 자리이동이 자유롭지 못하고 내부에 휴지를 둘 수 없으며 다른 단어를 넣어 분리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자리이동이나 휴지, 분리 가능성의 기준에 의해 '돌다리'와 '등불'은 하나의 단어로 볼 수 있게 된다.

 

물론 자리이동이나 휴지, 분리 가능성의 기준으로 단어 정의의 어려움이 완벽하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깨끗하다'는 분명 하나의 단어로 생각되는데, '깨끗도 하다, 깨끗은 하다'와 같이 단어 내부에 다른 요소의 개입이 가능하다. 이런 예외적인 현상의 존재는 단어의 객관적인 정의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잘 보여 준다.

 

단어의 정의가 어려운 것은 이 용어가 문법 용어이기 이전에 일상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는 사실과도 관련이 있다. 일상어에 쓰이는 말은 엄격한 정의에 따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언중들이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쓰기 때문이다. 단어와 유사한 의미로 쓰이는 '낱말'이나 '어휘'의 정의 역시 쉽지 않다. '낱말'은 '단어'의 순화어이기는 하나 문법 용어로 삼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아 요즈음은 남북을 가리지 않고 '단어'라는 말이 많이 쓰인다.

 

단어의 정의가 어렵기는 하지만 단어는 가장 기본적인 문법 단위의 하나이다. 아이가 태어나서 말을 배울 때 가장 먼저 배우는 단위가 바로 단어이다. 아이는 '맘마', '물', '빨리'와 같이 '한 단어를 말하는 단계'를 거쳐 '엄마 물'이나 '빨리 와'와 같이 '두 단어를 말하는 단계'를 거쳐 점차 완전한 문장을 말하는 단계로 나아간다. 또한 외래어를 받아들일 때나 외국어를 학습할 때도 단어는 가장 중요한 단위가 된다. 문법 기술에 있어서도 품사 분류를 논의하거나 단어 형성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단어를 정의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단어와 관련된 다양한 논의들

우리말 문법가들은 주로 조사와 어미의 처리를 달리하여 단어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보여 왔다. 구체적인 문장을 예로 들어 여러 문법가들의 논의들을 알아보기로 하자.

 

(2) 철수가 책을 읽었다.

 

첫째, 주시경을 비롯한 초기 문법가들의 견해를 들 수 있다. 주시경은 조사나 어미의 일부를 단어로 인정하고 있다. 이런 견해에 따르면 예문 (2)는 '철수, 가, 책, 을, 읽, 었다' 등 6개의 단어로 짜여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주시경이 이런 견해를 가지게 된 이유는 언어 단위를 최대한으로 분석하려는 태도에 기인한 것이었다.

 

둘째, 최현배를 비롯하여 1930년대에 한글맞춤법 제정에 참여한 학자들의 견해를 들 수 있다. 이들은 조사는 단어로 인정하나 어미는 단어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견해에 따르면 예문 (2)는 '철수, 가, 책, 을, 읽었다'의 5개의 단어로 짜여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어미와 달리 조사를 단어로 인정한 이유는 조사에 선행하는 체언이 어미에 선행하는 어간보다 자립성이 높으므로 조사도 어미보다 자립성이 높다는 것에 근거를 둔 것이었다. 이 견해는 이후 학교 문법에서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런 논의들은 우리말의 조사나 어미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와 관련이 있다. 우리말의 조사나 어미는 굴절어의 굴절 요소들과 그 성격이 다르다. 라틴어나 독일어, 프랑스어 등 굴절어들에서 나타나는 굴절요소들은 단어에 결합하므로 그 전체를 단어로 보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에 비해 우리말의 조사나 어미는 단어가 아니라 구에 결합하므로 조사나 어미가 결합한 단위를 단어로 보기가 곤란한 것이다. 위에서 제시한 바와 같이 여러 학자들의 단어 개념이 달라진 이유도 주로 조사나 어미를 보는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처럼 우리말 단어의 정의가 어렵기 때문에 최근에는 아예 단어의 개념을 해체하여 목적에 맞게 각각 다른 용어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음운 규칙이 적용되고 운율 구조를 가지는 단위인 음운론적 단어, 조사나 어미 등 문법 요소가 결합하여 문법적인 의미를 표시하는 문법론적인 단어, 의미를 기준으로 하여 사전에 올릴 때의 표제어가 되는 어휘소, 내지 어휘론적 단어 등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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