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품사 분류 - 4.1 품사 분류에 대한 이해 [우리말 문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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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품사 분류에 대한 이해

품사 분류의 필요성

단어는 여러 가지 기준에 의해 나누어진다. 어디에서 유래했느냐에 따라 고유어와 외래어로 나눌 수 있고 구성 방식에 따라 단일어와 복합어로 나눌 수도 있다. 단어를 나누는 방법 중에서 대표적인 것의 하나가 품사 분류이다. 품사란 '단어를 문법적인 성질의 공통성에 따라 나눈 분류'를 말한다. 품사를 분류하게 된 이유는 단어 하나하나의 문법적인 특성을 효율적으로 기술하려는 데에 있다. 언어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언어는 수십만 개에 이르는 단어를 가지고 있다. 품사 분류는 수십만 개의 단어를 공통되는 문법적 특질에 따라 몇 가지 부류로 묶게 되므로 단어 하나하나의 특성을 기술하는데서 생기는 비효율성과 번잡함을 피할 수 있게 해 준다.

 

전통문법 시대에는 품사 분류가 문법 기술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그러다가 구조주의문법 시대나 변형생성문법 시대에는 그 비중이 다소 낮아지게 되었다. 오늘날 이론문법에서는 품사 분류가 표면적으로는 별로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다음 몇 가지 이유에서 품사 분류는 여전히 필요하다. 첫째, 단어가 문장에서 실현될 때 여러 가지 문법적인 행위는 품사에 의해 결정되는 일이 많으므로 품사는 가장 기본적인 문법 범주를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품사를 기준으로 자동사와 타동사, 자립명사와 의존명사와 같은 하위 범주를 나누고 있으므로 품사 분류는 여전히 필요하다. 둘째, 어린이가 단어를 배울 때도 특정 품사를 빨리 배운다든지, 품사의 차이를 은연중에 이해한다든지 하는 등 품사가 중요한 단위가 된다는 것이 언어 습득 연구에서 밝혀지고 있다. 셋째, 우리가 사전을 편찬하거나 이용할 때 품사는 매우 중요한 정보가 된다. 따라서 기술문법이나 규범문법과 같은 이론적인 측면에서든 사전의 편찬과 같은 실용적인 측면에서든 품사 분류는 여전히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품사 분류의 역사

품사는 단어를 분류하는 가장 오래된 방식의 하나이다. 서양에서는 이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독자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명사와 동사, 단어들의 논리적 관계를 연결하는 접속사 등 단어들의 품사가 분류된 바 있다. 그 후 중세의 문법학자들의 연구를 거쳐 18세기의 규범문법 연구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전통문법에서 품사 분류는 문법 연구의 중요한 분야의 하나로 여겨졌다.

 

우리 조상들도 아주 오래 전부터 품사에 대한 뚜렷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향찰이나 이두, 구결과 같은 차자 표기에서 실제적인 의미를 가지는 단어와 형식적인 의미를 가지는 단어의 구별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 이를 보여 준다. 또한 15세기에 간행된 훈민정음으로 된 문헌에서 단어를 뜻풀이할 때 품사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풀이하고 있어 품사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오늘날 우리가 널리 사용하고 있는 '명사, 대명사, 수사, 동사'와 같은 품사 분류는 개화기를 전후하여 서양의 전통문법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진 것이다.

 

 

4.2 우리말의 품사 분류 기준과 품사 분류

 

품사 분류의 기준

모든 분류에는 기준이 필요하다. 앞에서 말했듯이 품사란 단어를 문법적인 특징의 공통성에 따라 나눈 부류이다. 여기서 문법적인 특징이란 형식 및 기능에서의 성질을 말한다. 이 두 가지가 품사 분류의 주요 기준이다. 이 밖에 품사 분류의 보조적인 기준으로 의미를 들기도 한다.

 

'형식'이란 단어의 형태적 특징, 곧 어미에 의한 굴절의 양상을 말한다. 따라서 형식은 어미의 변화가 다양하게 나타나는 굴절어의 품사 분류를 위해 매우 중요한 기준이다. 하지만 우리말은 굴절어가 아닌 교착어이므로 형식이 중요한 기준이 되기 어렵다. 굳이 우리말에서 형식을 품사 분류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동사나 형용사와 같이 어간에 어미가 결합하는 부류와 그렇지 않은 부류를 나누는 데에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형식을 기준으로 나누면 우리말의 단어는 형식이 변하는 가변어와 형식이 변하지 않는 불변어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1) 가. 나는 새 옷을 샀다.

     나. 하늘이 매우 푸르다.

 

(1가, 나)에서 '나, 옷, 하늘'과 같은 명사나 대명사, '새, 매우'와 같은 관형사와 부사, '는, 을, 이'와 같은 조사는 형태가 변하지 않으므로 불변어에 속한다. 이에 비해 '사다, 푸르다'와 같은 동사와 형용사는 가변어에 속한다. 물론 명사나 대명사, 수사와 같은 체언에 조사가 결합하는 것을 용언에 어미가 결합하는 것과 유사한 것으로 본다면 이들을 가변어에 넣거나 가변어와 불변어 사이에 '준가변어'를 설정하여 이들을 따로 위치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기능'이란 한 단어가 문장 안에서 다른 단어와 맺는 문법적 관계를 말한다. 이미 말했듯이 우리말은 굴절어가 아니어서 단어들의 형식적인 차이가 잘 나타나지 않으므로 품사 분류의 기준으로 기능이 가장 중요하다. 특히 학교문법의 경우 품사 분류의 기준 중에서 기능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2) 가. 이 호수의 깊이가 얼마냐?

     나. 이 산의 높이가 얼마냐?

 

(3) 가. 이 호수는 매우 깊다.

     나. 이 산은 조금 높다.

 

(2가, 나)에서 '깊이'와 '높이'는 문장의 주어로 쓰이고 있으므로 그 기능이 같다. (3가, 나)의 '깊다'와 '높다'도 문장의 서술어로 쓰이므로 문장의 기능이 같다. 또한 (3가, 나)의 '매우'와 '조금'도 서술어를 수식하는 부사어로서 문장에서의 기능이 같다. '체언, 용언, 수식언, 독립언, 관계언' 등은 주로 기능을 고려하여 품사를 분류한 것이다.

 

'의미'를 품사 분류 기준의 하나로 들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의미란 개별 단어의 어휘적 의미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품사 부류 전체가 가지는 의미를 말한다. 우리가 품사를 정의할 때 명사는 '사물의 이름을 나타내는 말', 형용사는 '사물의 상태를 나타내는 말'과 같이 표현하는 것은 바로 '의미'에 기준을 두고 분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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