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문법과 문법 연구-1 [우리말 문법론]
- 우리말 문법론
- 2022. 9. 28.
1.1 문법이란 무엇인가 (계속)
박승빈은 우리말을 잘 구사하는 사람은 어떤 표현이 문법적으로 맞고 틀렸는가를 판정하는 직판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이곳의 직판은 현대 문법 연구에서 흔히 사용하는 직관과 같은 뜻이다. 그리고 언어학적 분석과 설명은 전문가의 소관이라고 하여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말에 대하여 지니고 있는 직관과 구별하였다.
이희승은 흰 구름이 둥둥 떠가오를 흰 둥둥 구름이 떠가오와 같이 단어의 순서를 함부로 뒤섞어 놓으면 자연스럽지 못한 관계를 맺게 되어 무슨 생각을 나타냈는지 알 수 없다고 하였다.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것은 문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뜻이며 이는 흔히 비문법적 문장이라 부른다. 다음 예도 성격이 비슷하다
(5)가. 이곳에 앉지 않아라
나. 이곳에 앉지 마라
(5가)가 비문법적이라는 것은 명령형 어미 '-아라' 앞에 '않-'이 선택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아라' 앞에 '말-'이 선택된 (5나)는 문법적이다. 모어 화자라면 특별한 문법 지식이 없어도 문법에 어긋나는 문장을 가려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를 언어능력 또는 문법 능력이라고 한다. 다음 예문은 (5)와는 조금 성격이 다르다.
(6)가. 어머니, 아버지가 밥을 먹어요.
나. 어머니, 아버지가 진지를 잡수십니다.
(6가)는 문법에 어그러졌다고 하기가 어렵다. 한 군데도 우리말의 문법을 어긴 데가 없다. 아직 말을 배우는 5, 6세의 어린아이들에게서는 이런 말을 얼마든지 들을 수 있다. 실제로 어린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밥 먹어라는 말을 예사로 사용한다. 우리말에는 아버지와 같이 주어 명사구가 공대의 대상이 될 때에는 서술어에 공대의 '-(으)시-'를 붙이고 목적어 명사구 밥을 공대말 진지로 바꾸는 공대법이 있다. 이런 규칙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부모나 학교교육을 통하여 인위적으로 배운다. (6)의 옳고 그름을 판정하는 능력은 사용능력 혹은 통보 능력이라고 하며 이는 문법 지식 속에 넣을 수 있다. 문법 지식은 공대법, 품사, 명사, 주어와 같이 가정교육이나 학교교육을 통하여 습득하는 문법적 지식을 가리킨다. 이는 박승빈이 (4)에서 규정한 전문가의 임무와 같은 개념이다.
언어능력과 관련된 문법규칙의 위반은 모어 화자에게는 별로 발견되지 않고 우리말 구사능력이 올바로 갖추어지지 않은 재외 교포나 외국인들에게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사용능력과 관련된 문법 규칙의 위반은 모어 화자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 (6가)와 같은 예는 문법 지식의 부족에서 일어나는 일이 많다. 성인이라도 상황이 달라지거나 심리적 변화가 일어나면 공대법을 지키지 않을 수도 있다. 이는 문법 지식을 의도적으로 지키지 않는 예에 속한다.
1.2 문법의 영역과 연구방법
우리말 문법의 연구 분야는 우선 시간과 공간의 관점에서 나누어 볼 수 있다. 시간적으로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현대어를 중심으로 한 현대어 문법, 15세기 국어를 중심으로 한 중세어 문법, 그 밖에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어 문법, 17세기 이후에서 현대 이전까지의 국어자료를 대상으로 한 근대어 문법 등 일정한 시기에 따른 공시적 문법이 성립되어 있으며 이들을 종으로, 곧 통시적으로 잇는 역사 문법, 곧 문법사가 성립되어 있다. 한편 공간적 관점에서는 서울 방언을 중심으로 한 공통어 문법과 동남 방언, 서남 방언, 중부 방언, 영동 방언, 동북 방언, 서북 방언, 제주 방언 등을 대상으로 한 방언 문법이 성립되어 있고 이들을 횡으로, 곧 공간적으로 잇는 현대 방언 비교 문법이 가능하다. 그리고 우리말의 공간적, 시간적, 지역적인 모든 변종을 한 그릇에 담는 총체 문법도 구상할 수 있다.
눈을 밖으로 돌리면 그 나름의 문법을 구상할 수 있다. 우리말과 계통적으로 친족관계에 있다고 일컬어지는 몽골어, 퉁구스어, 터키어 등 알타이 제어와의 비교 문법이 오래전부터 탐색되고 있다. 모든 언어들이 궁극적으로 비슷한 질서 위에서 형성되어 있다는 관점을 취한다면 언어 보편성을 추구하는 관점의 문법, 곧 보편 문법의 성립도 논의할 수 있고 실제로 그런 방면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르치고 있는 외국어에 대하여서도 국어문법의 경우와 같이 각 영역에 걸친 연구가 가능하지 않은 바 아니나 그러한 작업은 우리의 힘이 아직 미치지 못하는 처지에 있다. 이들 외국어에 대해서는 효과적인 언어 학습에 대비한다는 뜻에서 우리말 문법 구조와의 차이점을 구명하는 대조 문법이 오래전부터 성황을 이루고 있다. 외국어 학습이 아니라 하더라도 범언어적인 관점에서 우리말을 다른 언어와 비교함으로써 문법 구조상의 유사점을 찾아낼 수 있는데 이는 언어 유형론 연구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문법론의 뜻을 넓게 잡으면 언어 현상 전반을 연구하는 언어학과 같은 뜻으로 사용할 수 있다. 더욱이 지난 세기 60년대부터 성황을 이루기 시작한 생성문법은 음운 현상은 물론 단어의 의미까지 문법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그러나 관용적으로는 단어와 문장에 관련된 제반 질서를 파악하는 것을 문법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다.
좁은 의미의 문법론은 형태론과 통사론의 두 분야를 거느리고 있다. 형태론은 단어의 변화와 형성 문제를 관장하고 통사론은 문장의 형성 문제를 취급한다. 문법 연구는 형태소가 어떻게 결합하여 단어를 이루며 단어가 어떤 방식으로 결합하여 문장을 형성하는가 하는 질서를 구명하는 것을 궁극의 목표로 삼지마는 단어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의 의미나 문장의 의미를 밝히는 일도 문법 연구의 대상이 된다. 곧 형태적 측면과 의미적 측면이 연구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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