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문법과 문법 연구 [우리말 문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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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법이란 무엇인가

 

문법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하여 문법이란 문장을 형성하는 규칙이다. 우리는 중학교나 고등학교 과정에서 우리말 문법이나 외국어 문법을 학습하고 이에 대한 교과서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런 경우에도 문법이란 말을 사용한다. 이때의 문법은 문법 과목이나 문법책을 뜻한다. 문법을 연구하는 우리말 연구의 한 분야를 문법론 또는 문법학이라고 말하거니와 이 경우에도 문법이라고 부르는 일이 많다. 그리고 범위를 넓히면 언어 현상에 내재해 있는 일정한 질서를 가리키는 경우에도 사용할 수 있다. 우리의 학교 문법이 현재 이러한 틀을 지향하고 있다.

 

한 언어의 문법을 설명하는 데는 규범문법적 태도와 기술 문법적 태도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규범 문법은 말이나 글을 어떻게 써야 하고 어떻게 쓰면 안 된다는, 옳고 그름의 규범을 제공한다. 이를테면 '이리 와라'와 '이리 오너라'는 다 같이 명령의 의미를 표시하지마는 전자는 표준어의 규범에 어그러지기 때문에 옳다고 할 수 없으나 후자는 표준어의 규범을 지켰기 때문에 옳다고 말한다. 반면에 기술 문법은 옳고 그름의 규범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 현상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데 이를 더러 학문 문법이라고도 말한다. 규범 문법에서 그르다고 판정을 받는 앞의 '이리 와라'가 기술 문법에서는 당당한 언어 실체의 대우를 받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문리가 나야 한문을 터득한다느니 문리가 트였다란 말을 써 왔다. 이곳의 문리란 우리말 큰사전에 한문의 조리를 뜻하는 말로 풀이되어 있다. 이는 한자를 결합하여 문장을 구성하는 일정한 질서를 가리키며 한문의 문법을 의미한다. 이런 사실을 통하여 우리 선인들은 문법이란 관념을 희박하게 나마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고대 이래의 이두, 구결, 향찰 등의 차자표기 자료나 15세기 이후의 한글 문헌을 유심히 살펴보면 우리말에 대하여도 문법적 관념이 상당한 정도로 발달되어 있었음을 관찰할 수 있다. 외국의 어느 한국어학자는 전통시대의 한국의 언어 연구는 세계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고 말한 일이 있다. 그러나 우리말의 문법 현상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우리말과 우리글이 공용성을 획득한 20세기에 들어와서야 가능하였다.

 

문법 연구의 초기에는 규범문법적 태도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시대가 내려올수록 기술 문법적 태도를 지향하여 왔다. 규범 문법적인 태도는 우리말 문법을 연구하여 현대적 의미의 국어학을 건설한 주시경의 국문론에서 찾아볼 수 있다.

 

(1) 어떤 사람이든지 남이 지어 놓은 글을 보거나 내가 글을 지으려하거나 그 사람이 문법을 모르면 남이 지어 놓은 글을 볼지라도 그 말뜻에 옳고 그른 것을 능히 판단치 못하는 법이요 내가 글을 지을지라도 능히 문리와 경계를 옳게 쓰지 못하는 법이니 어떤 사람이든 먼저 말의 법식을 배워야 할지라.

 

이곳의 말의 법식이란 문리나 문법의 다른 표현이다. 주시겨은 문법을 알지 못하면 남의 글을 잘 이해하기도 어렵고 자신이 쓴 글도 옳고 그름을 분간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유길준도 문전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의 사상을 정확하게 발표하는 법을 규정하는 학문이다라고 하여 역시 문법을 정확한 사상 표현의 법으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문법 연구의 경험이 쌓이게 됨에 따라서 초기의 규범문법적 태도를 극복하기 시작하였다. 주시경의 뒤를 이어 우리말 문법을 연구한 김두봉은 그의 조선말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2) 길이 없다고 하여 가지야 못할까마는 그 말미암을 땅이 어디이며 본이 없다고 하여 말이야 못할까마는 그 말미암을 바가 무엇이뇨. 이러하므로 감에는 반드시 길이 있고 말에는 반드시 본이 있게 되는 것이로다.

 

(2)는 길이 없어도 갈 수 있지마는 목적지까지 이르지 못하듯이 본이 없어도 말은 할 수 있지마는 자신의 의사를 올바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감에 길이 있듯이 말에는 반드시 본이 있다고 하면서 말의 본을 길에 비유하였다. 이곳의 본은 한 언어에 내재해 있는 일정한 질서를 가리킨다. 최현배도 우리말본에서 어느 나라의 말에도 제각기 일정한 본이 있나니, 그 본을 말본이라 하며라고 말하여 문법을 역시 언어에 내재하여 있는 일정한 질서로 규정하였다.

 

한편 문법이론과 문법에 대한 연구방법이 정밀화됨에 따라 문법을 문장 형성과 관련하여 정의를 내리기에 이르렀다. 이희승은 그의 초급 국어문법에서 문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뜻매김을 하였다.

 

(3) 단어가 서로서로 관계를 맺어서 글월을 이루는 법칙을 문법이라 이른다. 그리고 이 문법이라는 것은 말을 하는 데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는 데도 필요한 법칙이다. 대개 글이란 것은 우리가 하는 말을 그대로 적어 놓은 것이므로 말에 쓰이는 문법이 글에도 그대로 나타나게 된다.

 

실제로 이희승은 고양이가 쥐를 보고 뛰어가오를 고양이가 쥐야 보고 뛰어가오와 같이 조사와 어미를 법칙에 따라 배치하지 못하면 무슨 생각을 나타냈는지 그 뜻을 잘 알 수 없다고 하였다. 우리는 이희승이 문법에 대하 정의를 통하여 말에 쓰이는 문법과 글에 쓰이는 문법이 따로 있으며 두 문법은 그대로 통용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의 문법학자 가운데는 문법을 화자가 자기 모국어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무의식적인 지식으로 간주하기도 하였다. 박승빈은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4) 조선어를 효해하는 사람은 다 조선어 문법을 효해하는 사람이다. 언어학 연구에 속한 분류, 분석, 명명, 설명 등 여러 가지 고찰은 전문 연구자의 임무에 속한 것이지마는 언어가 문법에 맞았는가 틀렸는가의 결과는 상식적 직판으로 보통 사람들도 다 인식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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