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체언과 그 쓰임 - 5.2 대명사(계속) [우리말 문법론]
- 우리말 문법론
- 2022. 9. 29.
5.2 대명사(계속)
우리말의 대명사가 공대법에 따른 구별이 있기는 하지만 그 쓰임은 제약이 매우 심하다. 2인칭 대명사의 경우 예사말인 '너'에 대해 '자네, 당신, 그대' 등이 쓰이지만 각각은 제약이 매우 심하다. '자네'는 '하게체'를 써야 할 대상에게 사용하는데, '하게체' 자체가 현재로서는 많이 쓰이지 않아 대명사 '자네'도 그 쓰임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사실 2인칭 대명사 중에서 존비의 등분이 가장 높은 '합쇼체'와 함께 쓸 수 있는 대명사가 적당하지 않다.
(6) 가. 할아버지, 당신이 좀 도와주십시오.
나. 어르신께서 좀 도와주십시오.
'당신'이 '너'보다 공대말임에 틀림이 없으나 (6가)에서 알 수 있듯이 '합쇼체'와 같이 쓰기 어렵다. 잘 모르는 사이에 2인칭 대명사 '당신'을 쓰면 '왜 반말이야?' 하는 항의를 받을 수 있다. '합쇼체'를 써야 할 자리에는 대명사라기보다 일반 명사로 볼 수 있는 '어르신'이 사용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대'의 경우도 문학 작품이나 편지와 같은 문어체가 쓰이는 환경에만 쓰일 수 있을 뿐 구어체가 쓰이는 환경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는다.
1인칭과 2인칭 대명사의 경우 (3나)와 (4나)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 저희, 너희'와 같은 복수형이 따로 발달해 있다. 이 중 '저희'와 '너희'는 생산성이 없는 접미사 '-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말 대명사의 복수를 표현하는 일반적인 방식은 이른바 복수 접미사 '-들'을 붙이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네들, 당신들, 그대들, 이이들, 이애들, 이분들, 그들, 그이들, 그애들, 그분들, 저이들, 저애들, 저분들'과 같은 표현이 가능하다.
'-들'에 의한 대명사의 복수 표현과 관련하여 재미있는 현상을 한두가지 지적해 두기로 한다. 우선 이미 복수형인 '우리, 저희, 너희'에 다시 잉여적으로 '들'을 붙여 '우리들, 저희들, 너희들'을 사용하는 현상을 들 수 있다. 대명사의 복수를 나타내기 위해 '들'을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이에 이끌린 현상으로 보인다. '이, 그, 저' 중에서 '그' 만이 단수형의 인칭대명사로 쓰인다. 그런데 '-들'이 결합되면 '그들'뿐 아니라 '이들, 저들'도 복수형의 인칭대명사로 쓰일 수 있다는 점도 독특하다.
'우리'는 화자와 청자를 모두 포함하고 제3자만을 배제하는 경우에도 쓰인다.
(7)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듭시다.
(7)에서 '우리'가 단순히 1인칭의 대명사의 복수가 아니라 2인칭까지 포함하는 셈이다.
'저희'는 상대방에 대해 자신을 낮추는 겸사말이므로 청자를 포함하는 이런 경우에는 사용되기 어렵다. '우리나라'가 자연스럽고 '저희나라'가 어색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우리'가 단수가 쓰여야 할 상황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한 개인의 소유나 소속을 나타낼 때 '내, 나의'가 아니라 '우리'가 자연스럽게 쓰이는 현상은 잘 알려져 있다. 영어의 'my father, my brother, my country'는 우리말로는 '내 아버지, 내 형, 내 나라'가 아니라 '우리 아버지, 우리 형, 우리나라'인 것이다. 이는 가족이나 국가를 한 개인의 소유로 생각하지 않고 다른 가족과 공유하는 것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우리 마누라'는 이에 유추된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 아내'는 잘 사용되지 않으며 새로 생긴 말인 '우리 와이프'도 다소간 어색한 듯하다.
지시대명사
지시대명사란 사물이나 장소를 가리키는 대명사를 말한다. 대명사가 원래 지시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지시대명사란 표현이 불합리하고 사물대명사란 용어가 합리적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여기에서는 관습에 따라 그냥 지시대명사를 사용하기로 한다. 지시대명사는 다시 사물 표시 지시대명사와 장소 표시 지시대명사로 나누어진다.
(8) 가. 이것, 그것, 저것
나. 여기, 거기, 저기
(8가)는 사물 표시 지시대명사이고 (8나)는 장소 표시 지시대명사이다. 이들은 기원적으로 '이, 그, 저'에 명사가 결합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이, 그, 저'는 각각 근칭, 중칭, 원칭이라는 용어를 써서 화자를 기점으로 한 거리에 따라 선택되는 것으로 파악하기도 했으나 '이'는 화자에 가까운 쪽, '그'는 청자에 가까운 쪽, '저'는 화자와 청자에게 모두 먼 쪽을 나타낸다. 따라서 '이것, 그것, 저것'이나 '여기, 거기, 저기'는 화자와 청자로부터의 거리에 의해 구별된다.
'이리, 그리, 저리'를 방향을 나타내는 지시대명사로 인식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들은 대명사라기보다는 부사로 보아야 한다. 이들이 대명사라면 격조사와의 결합이 자유로워야 하지만 '이리가, 이리를, 이리에'처럼 격조사와의 결합이 불가능하다. 예외적으로 '이리로'가 가능하지만 이는 '로'가 방향의 의미를 지니는 조사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특수한 현상으로 보아야 한다.
미지칭과 부정칭
위에서 언급한 것들 외에 주로 '의문'의 기능과 관련되는 대명사들 중에는 미지칭과 부정칭의 구별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인칭대명사와 지시대명사 모두는 미지칭과 부정칭 대명사를 가지고 있다.
(9) 가. 누구, 어디
나. 아무개, 아무것, 아무데
(9가)는 가리킴을 받는 지시 대상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를 때 사용한다. 이를 미지칭이라 한다. 이에 비해 (9나)는 특정한 지시 대상 아닐 때 사용한다. 지시 대상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부정칭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미지칭은 '(이)나'나 '도'와 같은 보조사가 결합하게 되면 부정칭으로 쓰이기도 한다.
(10) 가. 아무나 좋으니 한 사람만 보내 주세요.
나. 누구도 그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부정칭과 미지칭이 강세 내지 억양의 차이에 의해 구별되기도 한다.
(11) 가. 누가 왔니?
철수가 왔어요.
나. 누가 왔니?
(누군지 몰라도) 왔나 봐요.
(11가)는 미지칭으로 '누(=누구)'가 미지칭으로 사용된 것이다. 이때는 '누'에 강세가 가고 문장의 끝은 내려간다. 이에 비해 (11나)는 부정칭으로 사용된 것이다. 이때는 '왔'에 강세가 가고 문장의 끝은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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